영산회괘불도
靈山會掛佛圖
시도유형문화유산
시대
조선 1892년
크기
가로 470㎝
세로 820㎝
세로 820㎝
재질
삼베에 채색
봉안처
성보박물관
본문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어 떠들썩하고 시끌벅적한 상황을 흔히 ‘야단법석惹端法席’이라고 표현한다. 사실 이 표현은 야외野에서 단壇을 마련하여 불법法을 펴는 자리席라는 뜻에서 유래되었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영축산에서 법화경을 설법하실 때 무려 3백만 명의 대중들이 모여들었는데, 사람이 많이 모이다 보니 시끌벅적하고 어수선하게 된 것이다.이처럼 많은 신도들이 참여하는 큰 의식은 법당이 좁아 모든 사람들을 수용할 수 없으므로 주불전 앞의 중정中庭에서 주로 진행되었다. 자연스럽게 불단도 법당 밖으로 옮겨지게 되었는데, 이로 인해 전각 안에 봉안된 불화를 대신하여 야외 의식을 위한 대형 불화인 괘불掛佛이 제작되었다. 괘불은 평소 괘불함掛佛函에 넣어 전각 내부에 보관하다가 의식이 있는 날 아침에 중정으로 이운하여 괘불대에 걸려[헌괘獻掛]진다. 헌괘를 통해 현실세계의 의식 도량으로 강림하신 커다란 부처님은 사부대중이 의식을 통해 불법을 듣고 깨달음을 얻는 과정 속에서 신심과 환희심을 불러일으키게 하였다.
법보종찰 해인사에도 영축산에서 설법을 하는 부처님을 그린 <해인사 영산회괘불도>가 전해지고 있다. 2015년에 경상남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어 2023년에 보존처리를 마치고 부처님 오신 날을 기념해 해인사성보박물관에서 공개되었던 이 괘불은 삼베 바탕에 밑그림을 그린 후 채색한 것으로, 전체 크기는 가로 470㎝, 세로 820㎝로 장대한 크기를 가지고 있다. 화면 하단에 있는 화기畵記에 의하면 광서光緖 18년(1892) 신도 을미생 박문환과 그의 부인 고씨 및 그들의 아들·딸이 살아생전에는 오래 살고 복을 누리며, 죽은 후에는 정토에 왕생하고자 시주하였다.
괘불의 엄청난 크기에 걸맞게 이를 그린 화승畵僧들도 많은 이들이 참여하였는데, 화기에는 서암전기瑞庵典琪와 우송상수友松爽洙를 비롯하여 총 14명이 함께 그렸음을 기록하고 있다. 화면의 구도는 중앙에 위치한 석가모니 부처님을 중심으로 하여 그 좌우에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이 서 있으며, 화면의 위에는 마하가섭존자과 아난존자를, 화면 아래 양쪽에는 각각 2위의 사천왕을 그렸다. 특히 부처님의 양옆에 자리한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은 양손으로 연화를 잡고 부처님보다 앞쪽에 서 있는 모습인데, 양 보살의 어깨에서 팔까지 굵은 먹선으로 윤곽을 그어 시각적으로 존상들 사이의 공간감과 입체감을 느낄 수 있도록 표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