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화상 진영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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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화상 진영 三和尙 眞影
시도유형문화유산
시대
조선 1892년
크기
가로 216㎝
세로 146㎝
재질
면에 채색
봉안처
성보박물관

본문

해인사 삼화상 진영의 전체적인 구도는 가로로 긴 화면에 중앙에 좌안칠분면左眼七分面의 조사와 그 좌우에 각각 좌안 칠분면과 우안칠분면으로 묘사된 세 분의 조사를 한 화면에 그려 놓고 있다. 중앙의 조사상은 왼쪽 무릎을 세운 후 그 위에 왼손을 얹혀두고 오른손은 측면으로 내려 갈고리 모양의 지물을 쥐고 앉아 있다. 이 조사상은 좌우의 조사상과는 달리 흰 수염과 가슴 부위에 구멍이 뚫린 모습으로 표현되어 있어 국보인 건칠희랑대사좌상을 모델로 하여 그려진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좌우측에 석장을 쥐고 앉아 있는 조사상들은 눈매 및 지물과 의습처리에서 미세한 차리를 보일 뿐 동일한 초를 대칭적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좌측에 순응 대사를 우측에 이정 대사를 그린 것으로 추정되나 명확하지는 않다.

주로 적색과 녹색을 위주로 채색되어 있으며 암반과 산언덕 등은 옅은 바탕색으로 칠해져 있어 화면이 밝으며 소나무는 담채 줄기 표현과는 달리 녹색 바탕에 백색 선으로 묘사된 솔잎 표현은 도식적으로 처리되어 있어 이 시기에 제작된 탱화들과 양식적인 맥을 같이하고 있다. 이처럼 세 분의 조사를 한 화면에 배치한 것은 나한도에서 간혹 보이는 형식이며 각 조사상의 표현에서는 진영도 형식을 따르고 있고, 천동과 천녀 및 소나무와 게곡 등의 묘사에서는 산신탱의 형식 또한 보여주고 있다.

향우측 조사상의 아랫면 화기에는 광서光緖 18년(1892) 해인사에서 조성하여 해행당解行堂에 봉안하였고, 금어金魚는 우송당友松堂 상수爽洙 스님이며 출초出草는 두명斗明 스님이 하였다는 화기畵記가 남아 있다. 채색이나 구도적인 면에서 19세기 말의 전형을 잘 보여주고 있으며, 특히 해인사 창건과 중흥에 관련된 3명의 인물을 한 화면 속에 담은 독특한 개성이 잘 드러나 있는 조사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