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경판
大藏經板
국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시대
고려
크기
가로 24㎝
세로 70㎝
두계 2.6㎝
세로 70㎝
두계 2.6㎝
재질
목조
봉안처
장경판전
본문
지금으로부터 600여 년 전, 외침을 피해 나라의 보배인 8만여 장의 대장경을 강화도 선원사에서 한양을 거쳐 해인사로 이운하는 대이동이 시작되었다. 강화도에서 뱃길을 이용해 고령 개경포까지 이운하였고, 뱃길이 닿지 않는 육로 이동에는 스님들을 비롯하여 양반부터 천민계급에 이르기까지 만백성이 동참하였다. 나라와 불교의 보배를 지키려는 마음은 신분을 구분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와 더불어 전쟁으로 혼란스러운 이 땅에 평화와 번영이 오기를 축수하였고, 왕실의 안녕과 극락왕생, 풍년 등을 기원하며 장대한 대장경 이운행렬을 이어갔다.이를 기리기 위해 매년 꽃비가 내리는 4월의 해인 대도량에서는 전국의 불자들과 함께 '해인사 고려팔만대장경의 날(정대불사)' 기념법회를 봉행한다. 정대頂戴란 글자 그대로 '머리에 이는, 또는 머리에 받드는 행위'로 대장경판을 머리에 이고 받들어 가장 지극한 존경의 뜻을 표시하는 의례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즉, 팔만대장경의 소장한 뜻과 이를 조성하고 수호하신 선조들의 정신과 업적을 기리는 것이다.
해인사 장경판전에 봉안된 대장경판은 고려시대(고종24~35년, 1237~1248)에 간행되어 고려대장경이라고 하며, 판수가 8만여개에 달하고, 8만 4천 번뇌에 해당하는 8만 4천 법문을 실었다고 하여 팔만대장경이라고도 부른다. 또한 재조대장경이라고도 일컫는데, 이는 고려 현종 때 새긴 초조대장경이 고종 19년(12332) 몽골군의 침입으로 불타 없어지자 다시 대장경을 만들었기에 붙여진 이름이다.
가장 혼란스럽고 힘든 전쟁 속에서 16년 간에 걸쳐서 조성되었으나, 수천만 개의 글자 하나하나가 오탈자 없이 모두 고르고 정밀하여 전해지는 대장경 중 가장 오랜 역사와 내용의 완벽함을 지니고 있다. 특히 당시 대장경 사업을 주관하던 개태사開泰寺의 승통僧統인 수기대사守其大師가 북송관판, 거란본, 초조대장경을 참고하여 내용의 오류를 바로잡아 제작하였는데, 이로 인해 현재 없어진 송나라 북송관판이나 거란대장경의 내용을 알 수 있는 유일본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
현존하는 세계의 대장경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일 뿐만 아니라 체제와 내용도 가장 완벽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으며, 1962년 대한민국 국보 지정에 이어 200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 유산으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