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보전 목조비로자나불좌상 및 복장유물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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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보전 목조비로자나불좌상 및 복장유물 썸네일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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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보전 목조비로자나불좌상 및 복장유물 法寶殿 木造毘盧遮那佛坐像 및 腹藏遺物
국보
시대
신라 9세기
크기
비로자나불좌상 : 높이 126.0㎝
후령통 : 높이 33.8㎝
재질
목조
봉안처
해인사 및 성보박물관

본문

비로자나 부처님은 《화엄경華嚴經》의 교주로서, 모든 부처님의 진신眞身인 법신불法身佛이자 보통 사람의 육안으로 볼 수 없는 광명光明의 부처님이다. 항상 여러 가지 몸, 여러 가지 명호, 여러 가지 삶의 방편을 나타내어 잠시도 쉬지 않고 진리를 설하시어 일체중생을 제도한다.

현재 해인사 대비로전大毗盧殿에는 두 분의 비로자나 부처님이 계시는데, 각각 팔만대장경이 봉안된 법보전과 해인사의 주전각인 대적광전에 봉안되었다가 지금의 대비로전에 함께 모셔지게 되었다. 크기와 모습이 서로를 빼닮아 ‘쌍둥이 부처님’으로 불리며 오래도록 많은 불자들에게 신심과 환희심을 불러 일으켰으며,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목조불상이라는 상징성과 당시 해인사의 화엄사상을 대변하는 대표적인 성보라는 가치를 인정받아 복장유물과 함께 대한민국 국보로 지정되었다.

두 불상의 제작시기는 양식과 도상, 과학적 조사를 토대로 통일신라 9세기 후반으로 추정된다. 해인사가 802년(신라 애장왕 3년)에 창건된 사실을 미루어본다면 크게 멀지 않은 시점에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재료는 향나무를 사용하였는데, 우리나라 목조불상의 대다수가 소나무나 은행나무인 것과 차별되는 매우 희귀한 사례이다. 또한 한 개의 원통형 나무로 불신佛身을 만들고 머리와 팔을 따로 접목시킨 점과 나발螺髮을 흙으로 별도로 만들어 붙인 점은 고려시대 이후에 등장하는 접목기법의 시원적 방식을 보여 준다.

게다가 완성도 측면에서도 매우 뛰어난 조각기법을 보여주는데, 9세기 석굴암 불상 양식과 유사성을 보여주며 신라 전성기의 미적 감각과 양식적 특징이 잘 반영되어 있다. 왼손 검지를 오른손으로 감싼 지권인의 수인手印과 한쪽 어깨를 드러낸 편단우견偏袒右肩의 옷차림, 무릎 사이의 부채꼴 모양의 주름, 원만한 얼굴과 당당하고 건장한 신체표현 등이 이를 대변한다.

불상과 더불어 납입되었던 복장유물에는 고려∼조선시대에 이루어진 불상의 중수과정에서 추가로 납입된 귀한 전적과 직물들이 포함되었는데, 특히 1490년 중수 복장유물은 조선 초기 왕실 발원 복장유물의 대표적인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복장에서 나온 후령통은 원래 형태가 완벽하게 보존된 것으로, 16세기 『조상경造像經』의 시원이 된 복장 안립 물목의 종류와 안립 절차에 대해 규명하게 된 결정적인 자료를 제공해 주었다. 이러한 복장유물의 물목과 체계를 통해 당시 해인사의 위상과 왕실불사의 수준과 함께 고려∼조선 초기까지 복장 납입 및 불상의 중수 사실 등을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해인사 법보전·대적광전 목조비로자나불좌상은 뛰어난 조형성과 역사성은 물론 종교적인 이상미를 갖춘 우수한 불상이며, 법보法寶 <고려 팔만대장경>과 승보僧寶 <건칠희랑대사좌상>과 함께 불보佛寶로서 해인사의 삼보를 상징하고 있다.